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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의 시각- 헬조선식 위로

2019. 01.04. 00:00:00

한경국 문화체육부 차장대우
"나 때는 더 했어. 너보다 더 힘든 사람을 생각해."
최근 나라별 위로하는 방법에 대한 글을 본적이 있다. 이 글에는 일본, 미국, 한국 등 3개국 사람이 등장한다. "난 쓰레기야. 아무것도 못할 거야"라고 고민을 털어놓는 상대를 향해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위로한다.
미국인은 "오 저런! 다신 결코 그런 말 하지 마. 넌 해낼 수 있어. 포기하지 마. 알겠지?"라고 응원한다. 일본인은 "정말? 아니 그런 말 하지 마. 내가 응원해줄게. 함께 힘내자!"라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반면에 한국인은 어떻게 위로를 했을까. 아마 이쯤 되면 뭐라고 했을지 예상할 것이다. 한국인은 "나도 힘들다. 그리고 아프리카에 있는 애들은 더 힘들어!"라고 말했다.
물론 이것은 유머를 위해 만들어진 글이다. 또 한국인처럼 이렇게 말하는 경우를 일반적이라고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너만 힘들지 않다'라는 식으로 위로하는 말이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들어볼 수 있기 때문에 이같은 유머가 만들어져 공감을 사고 있다. 실제로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어봤다.
누군가는 이런 식의 위로를 '헬조선식 위로'라고 말한다.
헬조선은 최근 알려진 인터넷 신조어다. '헬(Hell)'과 '조선'의 합성어로 '지옥같이 희망이 없는 한국사회'라는 의미를 표현할 때 쓰인다. 여기에 내가 힘들 때 다른 사람의 더 큰 고통을 보고 참아내라는 식의 말이 곁들어지면 '헬조선식 위로'가 완성된다.
내 경우 헬조선식 위로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고민 상담자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말이기 때문이다. 더 큰 곤경에 놓인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됨으로써 내가 겪고 있는 아픔에 대해서 아무 말 못하게 될 뿐이다.
더 불행한 사람의 사례를 들어 '넌 행복한 거야. 너의 상황이 더 낫잖아. 그러니까 행복해야 돼'라고 말하는 것은 행복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헬조선식 위로가 시작됐을까.
아마도 기성세대의 입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절대적 빈곤을 경험한 세대들은 상대적 빈곤을 겪고 있는 지금 세대를 향해 "너희부터는 행복해라"고 격려한 것이 차츰 변질 돼 이런 형태의 위로로 남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고통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다리가 부러진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도 칼날에 베인 나의 쓰라림은 여전하다.
고통은 주관적인 경험이다. 모두가 가장 힘든 상황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위로할 수 있는 2019년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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