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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의 시각- 음수사원(飮水思源)

2019. 02.22. 00:00:00

서충섭 사회부 차장대우
"요즘 새마을회는 박정희·박근혜랑 전혀 접점이 없어요. 저 역시도 민주당원이고 여기 모인 분들도 지역사회에 봉사하려는 일념으로 활동해요. 광주 대소사를 함께하는데 너무 안좋게만 보지 말았으면 하네요."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망언으로 분노로 들끓었던 지난 16일 광주 동구 금남로. 수천명의 군중 틈바구니 사이에 녹색 조끼를 입은 광주 새마을회 회원들도 한 자리를 잡고 "자유한국당 해산"과 "지만원을 구속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 가운데 한 새마을회 회원은 자신들에 비춰진 유신 잔재, 적폐 분위기에 대해 이같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의 섭섭함이 영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외치며 전 국민이 거리로 나왔던 지난 2016년부터 2017년 사이의 촛불집회 당시 광주 새마을회 회원들도 거리로 나왔던 것을 기억한다.
그들은 도로 한켠에서 천막을 치고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에게 커피를 건네며 촛불의 온기를 나누곤 했다.
박정희로 인해 만들어진 단체가 그 딸을 규탄하는 집회에 참석해 호의를 베풀었으니 누가 보기엔 이적행위(?)라고도 보일 수 있겠다.
이밖에도 새마을회는 불우이웃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매년 펼쳐오며 지역 사회에 기여해 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좋은 활동들을 빛바라게 한 것이 바로 새마을 장학금이었다.
지금으로부터 41년 전인 1978년, 내무부의 지시에 따라 전국 자치단체가 관련 조례를 제정하면서 새마을회 지도자 자녀들에게 장학금이 지급됐다.
150만 광주 시민을 대상으로 한 빛고을 장학금이 연간 2억원 지급되는데 세금으로 9억원이 지급되는 새마을 장학금은 분명 혜택이었다.
1인당 평균 160여만원을 받은 셈이고 일부는 몇 차례씩 중복 지급받기도 했다.
'물을 마실 때는 그 근원을 생각하라'는 뜻의 사자성어 음수사원(飮水思源)은 박정희가 즐겨 사용하던 말로, 박정희와 육영수의 이름을 딴 정수장학회 장학생에게 수여되는 메달 뒤에 새겨진 문구기도 하다.
온정으로 받아든 한 잔의 커피에서까지 박정희를 생각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새마을 장학금의 근원은 누가 보더라도 서슬 퍼렇던 1978년 유신시절이다.
지난해 동시지방선거에 단체장으로 출마를 앞둔 한 광역의원에게 "새마을 장학금 폐지에 왜 안나서느냐"고 물었다.
그는 "회원이 2만 명에 가족들까지 하면 유권자가 몇 명인데요. 장학금 지키면 오히려 영웅 취급 받을 분위기인데요."라고 손사래쳤다.
당시 이처럼 눈치보던 정치인이 한둘이었을까.
결국 새마을장학금 특혜 폐지 시민회의의 주도로 3년째를 맞은 폐지 운동은 용기 있는 초선 의원들의 소신으로 지난 19일, 폐지 조례안이 심의를 통과하면서 결실을 맺었다. 광주 새마을회로서는 전국적으로 멀쩡히 지급되던 장학금을 광주에서만 빼앗겼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고, 나는 별로 혜택을 보지도 못했다며 억울할 수도 있다.
뭐했길래 그게 폐지되도록 놔뒀느냐는 타 지역 지회의 비아냥을 들을 수도 있다.
실제로 얼마 전 만난 새마을회 한 관계자는 "왜 하필 민주화의 도시 광주에서 폐지 운동을 벌이느냐. 전국적으로 확산되면 어떡하느냐"며 볼멘 소리를 했었다. 폐지 운동에 나선 의원들을 원망하는 말도 한 그가 이번 결정을 납득하길 바란다.
새마을회도 이제 자의든 타의든 들이닥친 변화의 바람에 직면했다. 혁신과 자립으로 더 나은 광주를 위해 기여하길 기대해 본다.
운동이 시작되기 전에는 존재조차 몰랐던 잔재가 어디 새마을 장학금 뿐일까.
진보는 항상 고통을 수반하지만 결국 실현되는 방향으로 간다. 이번 또한 광주 시민들이 그것을 가장 먼저 보여준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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