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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박석호 경제부장
입력 : 2019. 10. 09(수) 16:10
박석호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뭣이 중한지도 모르면서…”

2016년 5월 개봉해 700만 명의 관객을 모은 화제의 영화 ‘곡성’에서 귀신 들린 딸 효진(배우 김환희)이가 주인공인 아빠 중구(배우 곽도원)에게 눈을 흘기면서 내뱉은 대사이다. 몇 년이 지났지만 김환희 양의 명연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이 대사는 억양이 거센 전라도 사투리로, 표준어로는 “무엇이 중요한데! 무엇이 중요하냐고?” 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 대사가 관객들에게 던진 메시지는 명확하다. “당신은 과연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아느냐”고 꼬집는다.

작금의 우리나라 상황에 비춰보면 왠지 모르게 가슴에 와 닿는다. 일본 경제보복 등 대외적인 불안요소와 경기침체, 돼지열병 등으로 서민들의 삶은 팍팍해 지고 있는데, 국가의 모든 화력이 조국과 정치에만 몰려 있는 현실에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성찰해 보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하지만 ‘진보 대 보수’라는 이념 대결장으로 전락한 ‘조국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대부분은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지 모른 채 행동하고 살아간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가치를 외면하기도 한다.

최근 광주·전남 지방자치단체 금고 선정을 앞두고 시중은행과 지역은행의 혈투가 벌어지고 있다. 막강한 자금력과 인지도를 앞세운 시중은행들은 광역자치단체뿐만 아니라 기초자치단체 금고까지 잡아 먹을 태세다. 시중은행의 이런 움직임은 최근 금융환경 변화에 따른 새로운 활로찾기로 보인다. 지자체 금고에 선정되면 세입과 세출 관리, 운용 수익은 물론 공무원들을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고 대외적으로 신뢰감과 브랜드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올해 말까지 광주·전남 5곳의 지자체에서 ‘새 금고지기’를 선정한다.

그렇다면, 지자체 금고 선정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지자체 금고 선정은 금융기관의 대내외 신용도와 재무구조 안정성,자치단체에 대한 예·대출 금리, 주민 이용 편리성, 금고 업무 관리능력, 지역사회 기여 및 자치단체와 협력사업 등으로 평가해 결정된다. 배점이 높은 신용도 및 재무 안정성, 금고 업무 관리 능력 등은 비슷해 협력사업비가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문제는 은행이 지자체에 금고 선정을 대가로 주는 ‘협력사업비’가 자금력이 풍부한 시중은행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자사 출신 첫 행장인 송종욱 광주은행장이 최근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요지는 이렇다. 광주형일자리 3대 주주로 참여하고, 태풍과 대형 화재 등 지역의 재난상황이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손을 내미는 등 지역사회에서 역할을 해 오고 있는데, 지자체들이 이런 지역은행의 역할을 도외시한 채 단순한 자금 논리에만 치중해 협력사업비에만 골몰해 있다는 불만이다. 그러면서 송 행장은 “지자체 금고 유치는 향토은행의 ‘생존권’이나 다름 없다”고 역설했다.

물론 송 행장의 발언에 대해 “21세기 세계경쟁시대에 무슨 지역은행 타령이냐”, “광주은행이 잘한 일이 무엇이냐”고 비판할 수 있다. 그동안 광주은행의 지역은행 역할이 부족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송 행장 취임 이후 광주은행은 달라졌다. 은행 지점을 2층에서 1층으로 다시 내리고, 수도권보다 지역 영업망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다들 모른 체 할 때 ‘광주 완성차 위탁생산공장 합작법인’에 260억원을 과감히 투자하고 시중은행과 비교가 되지 않는 당기순이익의 10%를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등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공격적인 지역밀착경영을 펼치고 있다.

지자체 금고는 지자체와 단체장의 돈이 아니다. 주민들이 ‘우리 동네 잘 살게 해 달라’고 맡긴 돈이다. 당연히 ‘주민 행복과 지역발전’이라는 거시적인 측면에서 쓰여져야 한다. 지역에서 낸 돈이기 때문에 중앙이 아닌 지역민에게 돌아가야 한다. 수익이 아닌 지역인재 채용과 지역자금 역외 유출, 지역사회 공헌 등 지역 가치를 추구하는 은행에 지자체 곳간을 맡겨야 한다. 견수불견림(見樹不見林).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사자성어를 되새길 때다. 효진이가 지자체장들에게 묻는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박석호 경제부장 haitai2000@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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