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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의 시각] 그의 웃는 얼굴을 기대하며…
입력 : 2019. 11. 07(목) 14:55
김현주 편집부 차장

10년 전 유난히 추웠던 그 겨울. 그와 나는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을 맞으며 길 위에 서 있었다. 겨울비까지 내리던 그날 그의 표정은 잔뜩 찌푸린 날씨만큼이나 어둡고 무거웠다.

그의 손에는 ‘일본과 미쓰비시는 일제 피해자에게 사죄하고 배상하라’는 팻말이 들렸다. 기자들을 향해 “60년 한을 풀기 위해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서 사죄의 말을 듣고 싶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던 그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와의 첫 만남은 눈물로 기억됐다. 해를 넘긴 겨울의끝자락까지 이어진 그와의 만남에서 변하지 않았던 것은 차가운 길 위라는 점과 눈에 맺힌 눈물이었다.

2009년 그 해 겨울 전범 기업 미쓰비시는 광주 서구 상무지구에 버젓이 광주 전시장을 열었고 일본 사회보험청이 근로정신대 할머니 7명에 대한 후생연금으로 라면 두 봉지 값도 안되는 1인당 일화 99엔(한화 1천300여 원)을 지급키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쏟아낸 눈물의 의미를 쉽게 짐작케 한다.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은 13~15살 꽃다운 나이에 ‘중학교에 보내주고 돈도 벌게 해준다’는 말에 속아 일본으로 끌려갔다. 돈 한 푼 받지 못한 채 중노동에 시달렸고 해방 후 조국에 돌아와서는 ‘군 위안부’ 출신이라는 오해를 받으며 고통 속에 살아왔다. 양 할머니 역시 ‘일본에 가면 중학교에 보내주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선생님 말에 속아 일본으로 가게 됐다. 그때 나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고향 땅에 돌아와서도 죄인처럼 살아왔던 그가 10년 전 거리로 나섰다. 자신을 돕겠다는 시민단체의 응원에 용기를 낸 것이다. 그는 일본의 사죄 한마디를 받아내기 위해 광주에서, 서울에서, 또 일본에서 목소리를 냈다. 고통으로 보낸 70여 년의 세월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의 얼굴에는 마르지 않는 눈물이 고였다. 말로 다 풀어내지 못한 한(恨)이 눈물에 담겼을 것이다.

양 할머니와 시민모임은 법적인 투쟁도 이어갔다.

그들의 노력에 하늘도 감동했을까. 지난해 11월 대법원은 양 할머니 등 5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확정 판결을 냈다. 앞서 10월에는 일본 전범 기업 신일철주금(구 신일본제철)은 이춘식씨 등 징용 피해자 4명에게 손해배상을 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기도 했다. 청춘을 잃은 소녀가 아흔을 넘기고서야 얻은 값진 결과였다. 그토록 말했던 사죄의 말은 아니더라도 고통으로 얼룩진 삶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기쁨이 됐다.

하지만 판결 이후 1년이 지나도록 손해배상 이행은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전범 기업들은 우리 대법원 판결이 한일 협정과 일본 정부의 견해에 반한다며 아직도 배상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문희상 국회의장이 우리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판결 관련 해법으로 한·일 기업들을 포함한 기금설립안을 제시하면서 강제동원 피해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근로정신대 피해자를 비롯한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남은 시간이 넉넉치 않다.

“시간을 끌며 우리 죽기만 바라는 일본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양 할머니의 고된 싸움이 승리할 수 있도록 정부와 전국민의 관심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올 겨울에는 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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