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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원의 트빌리시편지

한희원의 트빌리시편지 19. 천년의 시간 건너 들려오는 수도자의 그윽한 마음

입력 2020.03.19. 10:01 수정 2020.03.19. 19:24
마르코피 수도원(상)
'절절하다는 것'

절절하다는 것

서로에게 사무치다라는 말은 하지말자

쉽게 별을 노래하고

쉽게 나무에 기대고

쉽게 길을 걷자

사무치는 것은 혼자의 길이다

절절하다는 것

내 가슴에 흐르는 강을

스스로 고개 숙여 보는 일

홀로 노 저어 가는 일  (한희원) 

'별과 사람들'

트빌리시에서의 생활은 처음부터 외로움과의 싸움이었다. 몸과 마음이 지쳐갈 무렵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외로움과 동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무릇 싸움이 지속되면 삶이 파괴되기 십상이다. 이국에서 오랜 시간을 버티려면 타협이 필요하다. 그런데 타협에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필수이다. 그것이 눈에 보이는 존재이든 보이지 않는 존재이든.

트빌리시에서의 외로움은 한국에서 경험했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외로움의 실체도 정확히 모른 채 조지아로 떠나와 외로움과 마주했다. 보이지 않는 세계로 초대된 사람마냥 답답하고 공허했다. 날마다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몰라 허둥거렸고, 가슴은 무언가에 짓눌린 것처럼 중압감에 시달렸다. 그러다가 눈부신 햇빛 한 조각이나 바람 한 자락에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했다. 좀체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던 몹쓸 외로움이 시간이 갈수록 불안감으로 커져갔다. 그럴 때마다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려 녹아내리게 했다.


섬을 바라볼 때 / 섬은 저 멀리 있었다 / 섬은 고립된 고독이었다 / 섬은 고독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다 // 무섭도록 거센 바람과 / 거친 파도를 홀로 맞고 있었다 / 나와는 관계없는 그의 고독이었다 // 어느 순간 내가 섬이 되었을 때 / 네가 섬이 되었을 때 / 우리가 섬이 되었을 때 / 각기 다른 고독이 / 쓰나미처럼 밀려왔고 / 침잠했다 // 바위처럼 견고해진 / 섬과 섬이 손을 뻗어 / 영혼의 다리를 만들면 / 서로에게 맑은 햇살이 흐른다 // 영혼의 다리를 건너는 / 기도의 발자욱 소리 / 거센 강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 홀로 있는 섬들이 / 서로가 그 존재를 느낄 때 / 섬은 바다를 향해 나르는 / 자유로운 새가 된다 / 고립의 대지 위에 피어나는 / 영롱한 꽃이 된다 (한희원의 시 –섬- 전문)

'별을 향해 가는 사람들'

트빌리시 근교 마르코피 수도원을 마주했을 때에도 을씨년스러운 외로움과 묘한 안도감이 경쟁하듯 몰려왔다. 바람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깊은 산중턱에 수도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람들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정적 속에서 색이 바래기 시작한 키 큰 나무들 사이로 천 년을 훌쩍 넘긴 석조건물이 서 있었다. 깔끔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돌들로 쌓여 있는 수도원이었다. 돌 틈 사이로 오래된 이끼가 스며들어 살아가고 있었다.

외로움의 근원 같은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까지 조지아에서 보았던 교회당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천 년을 넘게 지켜왔지만 많은 사람이 찾아와 관광지가 된 교회가 아니었다. 조지아의 교회는 대부분이 높은 언덕이나 구릉에 홀로 서있거나 도시나 마을의 중심에 있는데 마르코피 수도원은 깊은 산속의 암자처럼 잠겨 있었다. 이곳을 친구 박문옥과 송기전이 조지아 여행을 마치고 귀국을 기다리다 반나절정도의 짬이 나서 트빌리시 근교에 있는 수도원을 찾게 된 것이다. 우연이 필연이 되는 것처럼 별생각 없이 찾은 곳이 인생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30라리(우리 돈 13,500원 정도)를 주고 택시를 탄 후 트빌리시 시가지를 벗어나 몇 개의 마을을 지난 후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려 숲이 우거진 산에 도착했다. 택시는 나뭇잎이 쌓인 작은 주차장에 정차했다. 주차장 옆에는 성자의 모습을 조각한 우물에서 약수가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푸른 빛의 성당'

마르코피 수도원은 6세기에 가다바니 지방의 이알로산 중턱에 아시리아 교부 중 한명인 안톤의 아버지가 설립했다. 수도원의 정문까지는 높은 석벽으로 쌓여 있어서 흡사 한국의 산사로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수도원 계단을 올라 성당 입구에 도달하니 산 아래 모습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겹겹의 산 너머로 트빌리시가 보인다. 수도원은 깎아지른 절벽처럼 만든 성곽 위에 지어져 있었다. 그런데 성곽에 총구가 뚫려 있었다. 전쟁이 이런 깊은 산속의 수도원까지 침범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예배를 드리는 곳 옆에 평평한 석조무덤이 있는데 그 위로 고양이 가족들이 앙증맞게 모여 앉아 있었다. 마치 가족예배를 드리는 모습처럼 보여 웃음이 절로 피어났다.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고양이들의 눈빛이 고요하고 맑았다. 동물들도 자기가 살고 있는 장소와 점점 닮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에서 살아가는 개를 보면 사납지 않고 그윽한 눈빛으로 사람을 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조지아 사람들은 이 무덤을 가장 신성한 곳으로 여기고 있다. 무덤 위에 불을 밝힐 수 있는 호롱불이 유리 갑 속에 들어있었다. 저녁 무렵 호롱에 불을 밝히면 조지아를 지키는 선지자의 혼이 떠돌 것만 같았다.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 우리는 조심스럽게 성당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희원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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