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로 지역을 ‘펀(FUN)’ 하자 ①프롤로그-광주·전남 현주소는?
'예향'으로 불리는 광주·전남지역의 공공미술은 얼마나 빛을 발하고 있을까.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공공미술(Public Art)에 대한 개념 정의가 필요하다.
'미술'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공공성(公共性)이 결합된 공공미술이란 무엇일까.
공공미술은 일반적으로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 '공공장소'에 설치·전시되는 미술 작품을 뜻한다. 거리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동상을 비롯해 분수, 벽화 등이 공공미술에 해당한다.
하지만 오늘날 공공미술은 단순히 장소와 결합을 중요하게 여기던 전통적 의미를 넘어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소통의 공간으로 확장되는 현대적 의미로 발전해가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공공미술을 크게 ▲공공장소 속의 미술(Art in Public Space) ▲공공장소로서의 미술(Art as Public Space) ▲공공의 관심 속의 미술(Art in Public Interest) 등 3가지 형태로 분류하고 있다.
그렇다면 공공미술의 범주는 어디까지일까.
공공미술은 노후된 담벼락의 벽화부터 석촌호수의 '러버덕'과 같은 조형물에 이르기까지 그 장르가 다양하다. 설치미술형과 시민참여형 등 유형도 가지각색이다.
공공미술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영국의 존 윌렛은 공공미술을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에 설치, 전시되어 누구나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접할 수 있는 작품'으로 정의했다.
어디까지를 공공미술로 봐야 할지는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채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공공미술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화·진화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공공미술은 단순 도시 미관이나 공간적 특성에 국한되지 않은 채 미디어아트와 퍼포먼스 등 새로운 형태로도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다.
공공미술은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기도 한다. 서울 청계천 초입에 위치한 '스프링'(Spring)이 대표적인 사례다.
높이 20m, 무게 9t 규모 '다슬기' 모형의 이 조형물은 최근 별세한 세계적 팝아티스트 클라스 올든버그가 그의 아내 코샤 반 브루겐과 공동 제작한 작품이다.
붉은색과 푸른색이 교차하는 철판을 나선형으로 꼬아 올린 이 작품에는 스테인리스 스틸과 알루미늄, 섬유 강화 플라스틱 등이 사용됐다.
2006년 9월 청계천 복원 1주년을 맞아 상징 조형물로 설치됐지만 당시 국내 미술계에서 작품이 지나치게 상업적이라 청계천을 제대로 상징할 수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클라스 올든버그는 준공 당시 "하늘로 솟아오르는 물과 샘의 원천, 흘러내리는 한복의 옷고름, 도자기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스프링은 또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상징한다"고 반박했다.
한때 34억원이라는 막대한 제작비용이 투입돼 미움의 대상이었던 '스프링'은 현재 전국에서 방문객들이 찾아오는 사진 명소가 됐다.
국내 최대 규모 체험형 조형물인 포항의 '스페이스 워크'(Space Walk)도 랜드마크로 발돋움하고 있다. 이 작품은 2019년 포항시와 포스코가 '환호공원 명소화' 업무협약(MOU)을 맺고 2년 7개월에 걸쳐 가로 60m, 세로 57m, 높이 25m의 곡선형으로 건립한 조형물이다.
조형물이 마치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뜻에서 스페이스 워크라고 명명했다. 총 333m 길이의 철 구조물 트랙을 따라 걸으며 환호공원과 포항제철소, 영일만, 영일대해수욕장 등 주변 풍광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환호공원의 랜드마크가 된 스페이스 워크는 지난해 말 개방 한 달 만에 7만6천여명이 다녀가는 등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광주·전남지역 공공미술의 현주소는 어떨까.
광주의 대표 공공미술로 광주폴리가 있다.
폴리(Folly)는 건축학적 의미로 본래의 기능을 잃고 장식적인 역할을 하는 건축물을 말한다.광주폴리는 기존 폴리의 의미에 더해 공공공간 속에서 기능적인 역할까지 아우르며 도시재생에 기여할 수 있는 건축물이라는 의미다.
2011년 제4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일환으로 제1차 광주폴리가 세상에 처음 등장한 뒤 2013년부터 독립적인 프로젝트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31개의 광주폴리가 광주 곳곳에 설치돼 구도심 등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동시대 핵심 문제인 기후변화에 초점을 둔 제5차 광주폴리는 현재 진행 중이다. 기존 광주 도심에 설치된 31개의 폴리와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의 연계를 통한 '광주폴리 둘레길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조성된 폴리와 적극적으로 연계하면서 광주의 문화예술관광 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광주폴리의 그동안 행보를 두고 회의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광주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 명진 의원은 최근 '광주폴리 프로젝트'를 예산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5차로 마무리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광주폴리 프로젝트가 미디어아트 창의 도시와 민주·인권도시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도시재생의 건축·예술 프로젝트인 만큼 전시도 중요하나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체험할 부분에 집중해서 중점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광주폴리를 5차로 마무리하고 그동안 진행됐던 것에 대한 성과를 보다 심도 있게 검증하고 보완해 다시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시민참여형 공공미술의 중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유지·관리에도 힘써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제2차 광주폴리 당시 광주역 일원에 설치된 '혁명의 교차로'는 8년 가까이 개보수 작업이 이뤄지지 않아 도로에 그려진 그림이 지워지는 등 훼손된 상태다. 이 작품에는 약 2억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비엔날레는 체계적으로 관리가 이뤄지고 있는 다른 광주폴리와 달리 해당 작품은 광주역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인해 이설될 가능성이 있어 보완 작업을 미루고 있다고 해명했다.
전남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22개 시·군 주도로 다양한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산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를 찾기 힘들다. 대부분 일회성 프로젝트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우선 공공미술은 대부분 관 주도 사업이 주를 이룬다. 이 같은 경직된 구조 속에서 정부 정책에 따라 사업을 추진하다 보니 제한된 예산과 더불어 작가와 기획자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한 실정이다. 이는 곧 공공미술이 추구하는 '대중을 위한 미술'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귀결된다.
특정 사업의 예산이 큰 폭으로 삭감돼 사업 중단 위기를 맞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아울러 공공미술의 주체 중 하나인 시민들의 참여와 소통 부재도 방향성 상실 및 대중의 무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에 본지 취재진은 공공미술로 지역을 '펀(FUN)' 하자는 주제로 광주·전남지역 공공미술의 현 상황을 진단하고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국내 공공미술 성공 사례를 살펴봤다.
광주 동명동 '콩집', 경북 포항 '스페이스 워크', 서울 청계천 '스프링', 경남 부산 '깡깡이 예술마을', 대구 '이시아폴리스 문화예술 테마거리', 제주 '빛의 벙커' 등 장소를 찾아 작품의 가치와 의미, 지역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알아봤다. 특히 공공미술 작가와 운영자, 전문가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지여겡 적합한 정책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번 시리즈는 이번 주를 시작으로 총 7회 보도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관우기자 redkcow@mdilbo.com·이삼섭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