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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탐구자와 걷는 도시건축 산책

[공간탐구자와 걷는 도시건축 산책 ③폐선부지] 공간에 어린 기억 하나까지 모두 공공의 자산

입력 2021.02.25. 17:45

                                                                                             푸른길 공원으로 가꿔진 폐선부지 모습.

공간은 그곳에 어린 사람들의 숨결로 다시 태어난다.

우리는 왜 폐선부지를 살렸나. 그곳에는 철로를 배경으로 삶을 이어온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공간은 사람들의 삶으로 특별함을 갖는다. 시민들의 사소한 일상이 공공성을 갖게 되는 순간이다.

20년 전 1월의 일이다. 광주역에서 효덕초에 이르렀던 폐선부지의 공터. 선로는 다 철거돼 선로를 받치고 있던 목침들만이 군데군데 남아있는 그곳을 거닐었다. 허물어진 벽, 골목과 또 다른 골목의 끝자락이 철길로 인해 분리돼있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 모습을 통해 광주의 절반을 둘러싸 앉은 이 폐선부지가 수많은 마을과 길, 이웃들을 분절시켰음을 깨달았다. 단절을 불러일으킨 철로가 50여년의 철길 기능을 멈췄다. 실과 같은 긴 공백의 선형 공간은 분절된 많은 것들을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 속에 있었다. 이웃하고 있던 마을들이 다시 하나로 숨 쉴 수 있도록 해야 함에 광주 시민 모두 공감했지만 어떻게 다시 숨을 붙일 것인지에 대해선 수많은 고민들이 오고 갔다.

내 고향은 목포다. 목포는 일제 강점기부터 철도의 최남단 종점도시다. 일제가 약탈한 수많은 식량들이 여기 목포항에서 출발해야 했기에 한반도의 물자를 실은 기차가 도착하는 목포역과 목포항은 매우 가깝다. 그 사이 지역에는 일본의 수많은 주택과 관공서, 은행 등 일제 양식의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목포역에서 시작하는 철로는 목포의 중간을 잘라먹으며 지나간다. 아이들은 철길 곳곳에서 '울마을'에서 '저짝마을'로 원정놀이를 하기도 했다. 그것은 흡사 모험과도 같은,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의 전율을 줬다. 지루한 울마을을 벗어나 짜릿한 재미를 느끼게 해줬던 것이다. 철로는 강 같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여행을 느낌과 많이 다르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철길을 따라 생긴 좁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무화과가 열린 담 너머의 집도 있고, 부엌과 바로 맞닿아있어 밥짓는 연기가 나는 집도 있었다. 철길 쪽에 사는 친구는 '밤에 한번씩 기차가 지나가면 잠을 깨기 일쑤'라고 푸념하기도 했다. 목포에서의 추억 때문일까.

광주역의 폐선부지에 직접 발을 내딛는 순간 목포에서의 어릴 적 철로에 대한 기억과 느낌이 다시금 살아있는 모습으로 눈앞에 그려졌다. 이 폐선부지에 대한 감정의 전이는 졸업 설계에 그대로 이어졌다. 철길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주거들은 말 그대로 서민 중의 서민들이 살던 곳이다. 수많은 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기차가 지나간 철로는 동네 아이들이 모여 다양한 놀이를 펼치는 아지트가 되기도 했다.                                      광주역으로부터 효덕초에 이르는 폐선부지. 현재 이곳은 시민들이 쉴 수 있는 푸른길 공원으로 조성됐다.


철로는 없어지고 선로 주변 땅은 점점 새 건물들과 재개발로 인해 땅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반세기 동안이나 선로 주변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왔던 동네 원주민들은 떠밀려 쫓겨나기 시작한다.

폐선부지가 살아나고 광주시민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으로 오랫동안 남아 있기 위해서는 기존의 거주민들을 재정착시켜야 한다. 선로를 따라 시민 모두의 공용자산이자 공원으로 바꾸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렸을 적 공간과 향수, 추억이 유지되고 보존돼 갈 때 사람들이 느끼는 장소성은 더욱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다. 푸른길 자체의 기능을 계속해서 발굴해내려 하기 보다 철길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의 구조와 조직들 그리고 골목길의 정취를 재발견해 원주민들의 자녀들이 어른이 돼 돌아왔을 때 추억의 힘을 불어넣을 수 있는 장소성이 있어야한다.

점심을 먹고 한번 광주역에서부터 폐선부지를 걸어본다. 나지막한 주거들이 여전히 옹기종기 모여있기도 하다. 30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젊은 사람 몇몇은 조깅을 하고 공원 곳곳에는 어르신들이 평상에 앉아 쉼을 달랜다. 동명동을 지나면 새로 지어진 예쁜 집들이 하나씩 보인다. 그 중 하나의 집을 설계한 적이 있는데, 그 집의 건축주는 철길 옆에서 40년을 살았다고 한다. 모으고 모아서 1, 2층은 카페와 사무실로 3층은 주택으로 구성한 소규모 다가구주택을 지었다. 무척이나 행복해했다. 과거의 모두였던 곳에 새 집을 다시 짓는다고 하면 얼마나 가슴벅찬 일일까.                                                      폐선로길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있는 나지막한 주거들의 모습. 당시의 향수를 불러낸다.


수많은 마을과 동네의 얼굴들이 서려있는 길, 동네 사람들이 모여 서로 대화하고 바둑도 두는 공간, 울창한 나무들이 뜨거운 여름날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그늘막이 되어 주는 곳. 좌우폭 10m가 채 되지 않지만 길이는 10㎞가 넘는 이 선형 공원은 지금 우리가 어떻게 가꾸어가고, 공간과 장소성을 어떻게 재탄생시켜내느냐에 따라 앞으로 광주만의 도시공간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머금는 지속가능한 공간이 될 것이다.

이원일 이엘건축사사무소 대표



이원일은

일상의 소중함, 지속가능한 공간과 장소를 탐구하고 이를 건축에 녹여내고자 노력하는 건축가이다.

그 장소에 있어야 할 건축은 공간과 내외부와의 관계와의 첫만남에 귀기울인다. 그것이 바로 건축과 도시의 첫 만남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남대 건축학과 학, 석사로 서울의 정림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시작했다. 이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전라남도 공공건축가, 전남대와 순천대 건축학부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다.

순천국가정원 내 정원지원센터 '그린플랫폼', 북구행복어울림센터 '어반블랜딩', 진안소방서, 다도해해상국립사무소 'M-island 네트워크' 등 디자인 공모를 통한 공공건축물 작업을 주로 한다. 전남대 정문 상업시설인 '街.居.途'로 광주시 건축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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