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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닝브리핑] 0과 1의 차이

입력 2020.07.14. 17:45
확진자수 0명을 알렸던 14일 오전 안전 알림 문자.

"0"


14일 오전 7시. 여느날처럼 아침을 준비하는 회사원 이모(29)씨는 세면대 위 선반에 핸드폰을 올리고 찬물을 틀었습니다. 얼음장같은 물로 세수를 하던 중 문득 이상한 점을 느낍니다. 핸드폰을 집어들고 잠금을 푼 뒤 문자메시지함을 열어봅니다. 으레 오던 빨간색 알림 문자가 한통도 없었습니다. "별일이 다 있는 날"이라며 칫솔에 치약을 밀어짜낸 아침입니다.

분무기같은 빗길을 뚫고 이씨가 회사 주차장에 도착한 8시. 드디어 재난문자의 알림이 뜹니다. '오늘은 늦었네'라며 확인한 문자의 내용은 '17일만에 지역 감염 0명'. 때마침 콧대까지 단단히 채운 마스크가 약간 갑갑해지던 찰나였습니다. 회사 건물로 들어가는 동안만큼은 신선한 공기를 양껏 들이마십니다.

'0'이라는 숫자를 바라보는 저마다의 시선 속 가장 큰 은유는 '있고 없음의 차이'입니다. 1과 100 사이의 차이는 양적인 차이 수준이지만, 0과 1 사이의 차이는 '존재의 유무'라는 점에서 무게감이 더욱 큽니다.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부분에서도 같은 맥락입니다. 확진자가 연일 나오던 일상 속 0이라는 숫자는 그야말로 상징적입니다.

0과 1 사이를 둔 반가운 사색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오후 2시 추가 확진자 집계 문자가 전송되면서 무드는 깨졌습니다. 빨간 알림은 우리를 다시 일상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야속하면서도 아쉬운 순간입니다.

어쨌든 다시 일상입니다. 숫자 0을 향한 애틋한 구애는 잠시 접어둬야겠습니다. 귀를 조이는 마스크를 더욱 단단히 여밀 때입니다. 동여 맨 마스크 탓에 안경에 김이 서리는 이씨의 저녁입니다.

이영주기자 lyj2578@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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