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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7주기]진도에서조차 고립···세월호, 갈 곳이 없다

입력 2021.04.11. 18:55
진도항에 남은 우재 아빠 고영환씨
공사장 자재 쌓이고 원인모를 사고도
20평 규모 기록관 건립도 주민들 반대
“피해자들끼리 싸움 붙이는 슬픈 처지”
세월호 참사 7주기를 1주일 앞둔 지난 9일 진도 팽목항에는 '잊지않겠다' 라고 적힌 기억의 노란 리본 물결이 펄럭이는 가운데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오세옥기자 dkoso@srb.co.kr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4년 동안 진상규명이 안된 건 고사하고, 자식들 잃은 장소에 20평짜리 기념시설 세우는 것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네요. 정부도 지자체도 피해자들끼리 싸움 붙이고 있어요. 국민 여러분들이라도 잊지만 말아주길 바랄 뿐이에요."

아들 이름을 꺼내자 아버지는 몇 마디 대답을 이어가다 금새 눈시울이 붉어졌다.

7년이 지나며 주변 풍경도 바뀌고 있지만, 아버지는 아직 2014년 4월16일 그날의 시공간에 머물러 있다.

지난 9일, 이제는 진도항으로 이름 바뀐 구 팽목항 세월호 유가족 컨테이너 식당 '팽목 식당'에서 만난 단원고 고 고우재군의 아버지 고영환(54)씨는 애써 착잡하고 서운한 마음을 숨겼다.

파도 소리만 들어도 몸서리 쳐지고, 접안하는 바지선의 쇠 긁는 소음이 귀를 파고들며 잠을 이루기 어려운 항구에서 우재군의 아빠는 7년을 지내왔다.

한때는 수많은 인파로 북적였던 이곳은, 이제 고영환씨 단 한명만이 남아 있다. 고씨마저 떠난다면 당장이라도 철거돼도 무리가 없는 상황이다.

진도항의 세월호 가족 공간은 이제 컨테이너 네동 밖에 남지 않았다. 가족 식당과 강당, 추모관과 성당이다.

몇년 전까지는 자원봉사자들도 서너명씩 찾아와 함께 지내기도 했으나, 기약 없는 일상에 발길이 끊긴지 한참 됐다.

코로나19로 추모객들의 발길도 뜸하다. 고씨는 "코로나 걱정이 없다. 오는 이 없는 이곳은 완벽한 격리공간이다"고 힘없이 말했다.

이따금씩 읍내로 나가 장을 볼 때면 주민들은 고씨를 안쓰럽게 위로한다. 그나마 지금까지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되고 있다.

소일거리가 필요할 때면 서망항까지 가서 그물을 손질해주고, 물고기를 받아온다. 목가적인 일상이 이어지나 싶었으나 이제 그마저도 하루하루 위협받고 있다.

세월호 참사 7주기를 앞둔 9일. 진도 팽목항에서 상주하는 세월호 유가족 고영환씨가 무등일보와 인터뷰하며 4·16 기억공간은 옛 팽목항에 조성돼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오세옥기자 dkoso@srb.co.kr

세월호 컨테이너에서 10m도 떨어지지 않은 주변에서 올 하반기 준공을 앞둔 진도군의 진도항 배후지 개발 공사가 한창이다.

진도 연안여객선터미널 신설, 진도항 2단계 건설사업, 항만배후단지 조성 등 총 2천억원 규모의 초대형 사업부지 한 가운데 세월호 가족 컨테이너가 있다.

세월호 유가족 컨테이너가 있는 이곳은 향후 새 연안여객선터미널이 자리잡는다. 결국 세월호 가족공간은 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고씨와 세월호광주시민상주모임은 팽목항 주변에 20평 규모 기록관을 건립해 세월호 참사와 이후 수년간 기다림의 기억을 보존하자는 생각이다. 그러나 진도군은 "진도항에 더이상 세월호 시설이 남아있는 것을 군민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있다.

공사가 이어지는 와중에 흉한 일들이 이어졌다. 4년 넘게 가족처럼 지냈던 진돗개 '팽목이' 세 가족이 올 1월 며칠 자리를 비운 사이 싸늘하게 죽어 있던 것이나 최근 고씨가 잠시 외출한 사이 샤워실에서 불이난 것이 그것이다.

그런가 하면 지난주부터는 '팽목 식당' 앞에 공사장에서 쓰는 공사 자재들이 쌓여 갔다. 진도군청 전직 공무원과 자영업자들로 구성된 단체가 세월호 관련 시설을 남기지 말라며 철거까지 요구해왔다.

지난 4년간 진상규명은 온데간데 없는 상황에 이제 '아픔의 공간' 진도에서도 작은 공간 하나 남기지 못하고 쫓겨날 신세다.

이 모든 것이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외치며 출범한 현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이 고씨를 더욱 야속하게 만든다. 세월호 조사 결과의 잇단 무죄에, 자꾸만 들려오는 세월호 유가족 단체의 반목, 거기다 피부에 와닿는 세월호를 향한 미움.

고씨는 "4년간 가만히 있으면 잘 되겠지 하던 생각이 잘못됐다. 정치권은 행사 때가 아니면 여기에 찾아오지도 않는다"며 "진도군도 이제 군민들 앞세워 컨테이너 철거하려 한다. 군민들도 그 당시 피해자들이다. 그런데 대안을 찾는 대신 피해자들끼리 싸움 붙여 살아남는 쪽만 살라는 거다"고 힘없이 말했다.

그럼에도 고씨의 희망은 국민들이다. 그는 "얼마 전에도 진도의 한 학교에서 학생들과 대화를 했는데 편견 없이 바라봐 준 학생들의 위로가 버틸 힘이 됐다"면서 "7년이 지난 세월호가 처한 상황을 국민들에게 전하고, 그들의 도움을 청하고 싶을 뿐이다"고 호소했다.

서충섭기자 zorba85@srb.co.kr·진도=박현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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