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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불법" "人災" 학동 붕괴 '앵무새 브리핑'

입력 2021.07.28. 15:28
[광주경찰청 참사 50일째 수사 결과 발표]
수평 무너뜨린 무리한 공사 "계획서 무시"
현산, 발뺌했지만 "불법 재하도급 알았다"
계약만하는 유령 업체 "지분 따먹기 횡행"
재개발 비위 관련 수사는 "아직 초기단계"
광주경찰정 한희주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장이 학동4구역 철거 건축물 붕괴사고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철거 건축물 붕괴사고는 전형적인 부실공사로 인한 인재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관할 지자체에 제출한 철거 계획서를 준수하지 않았으며, 주민 민원을 의식해 과도한 살수가 이뤄졌다. 또 지하층 보강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수평 중심이 무너지며 철거 중인 건축물이 붕괴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공사의 공동 수급자로 계약을 체결한 뒤 실제 공사에 참여하지 않은 이른바 '업체 간 지분따먹기'가 횡행했고, 원청사인 현대산업개발은 불법재하도급을 인지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광주경찰청 수사본부는 철거 건물 붕괴 참사의 원인과 책임자 규명 수사 성과를 참사가 발생한 지 50일째인 28일 발표했다.


◆ 철거 계획서는 철저히 '무시'

지난달 9일 붕괴된 건물은 지하1층 지상5층, 연면적 1천592.36㎡(481.68평), 건물면적327.84㎡(99.17평) 규모로, 93년에 준공돼 줄 곧 병원으로 이용됐다. 이후 재개발지역으로 승인되며 지난 5월 25일 철거가 시작됐다.

당초 관할 지자체인 광주 동구에 제출된 철거 계획서에는 '압쇄 철거' 공법으로 콘크리트 부재를 끼워놓은 상태에서 위에서부터 커터형식으로 자르듯 압쇄해 파쇄하는 방식이다. 또 건축물 외벽강도가 가장 낮은 건축물 좌측부터 후면, 정면, 우측 순서로 철거하고, 성토물을 3층까지 쌓은 뒤 지붕부터 철거한 뒤 성토물을 건물 외부로 빼고 하층부를 철거하는 것으로 적혀 있다.

하지만 건물 외벽 강도와 무관한 철거 작업이 진행됐고, 하층부 일부를 철거한 뒤 건물 내부에 성토를 조성, 수평 하중에 취약한 'ㄷ'자 형태로 철거가 진행됐다. 때문에 1층 바닥 하중이 증가했고, 자하층 보강조치도 없는 상태에서 계속 공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건축물이 붕괴된 당일 오전부터 소음과 분진 민원을 우려해 과도한 살수 지시가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직접적인 붕괴 원인으로 수평에 하중 취약한 상황에서 지하층 보강 없이 과도한 살수가 이뤄져 붕괴됐다고 결론 내렸다.


◆현대산업개발, 불법 재하도급 인지

경찰은 11일 시공사인 현산 권순호 대표이사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불법 재하도급 인지 여부와 사고 관련 본사 책임성을 규명하기 위한 경찰의 조사에서 권 대표는 "현산이 전국 50~60개 현장이 있어 기본적인 사안은 보고 받고 있지만 소소한 부분까지 보고받고 있지는 않다"며 "불법 하도급 부분은 전혀 몰랐던 부분"이라고 진술하며 본사의 책임성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철거 현장에서 현산 관계자가 계속 상주했던 점, 이른바 '밑동파기'식 공사를 암묵적으로 묵인한 정황이 포착됐다.

우선 SNS 단체 대화방에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은 정황이다. 해당 단체 대화방에는 한솔과 백솔, 현산 등 하도급 업체와 불법 재하도급을 받은 업체, 원청사까지 관계자들이 함께 대화를 주고 받았다. 이 과정에서 공사 진행 상황과 이에 해당하는 지시 사항이 오간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이와 함께 현산이 관리하는 공사현장 장비 등록 명단에 백솔의 중장비도 등록돼 있었다. 공사 현장에서 필요한 굴삭기 등 중장비는 원청사인 현산에 알려야 한다. 학동4구역 공사현장 등록 장비에는 백솔 대표인 A씨 회사의 굴삭기도 기록돼 있었다. 경찰은 이같은 이유로 현산이 불법 재하도급 과정을 묵인한 것으로 보고, 현산 본사가 위치한 서울시에 건설산업기본법위반 혐의 사실을 통보, 과태료와 이에 상응하는 행정처분을 요청한 상황이다.


◆ '지분 따먹기' 관행 막을 방안 전무

경찰은 공사수주 업체들의 이른바 '지분 따먹기'가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지분 따먹기'란 공사를 공동으로 수주한 뒤 실제 공사에 참여하지 않은 채 수익 지분만 챙기는 수법이다.

사고가 난 재개발사업 석면 철거 공사에서 2개 업체가 공동으로 공사를 수주했지만 1개 업체는 실제 공사에 참여하지 않고 수익만 나눠 가졌다.

이 업체들은 공사를 주수할 경우 지분으로 나누자고 사전에 협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실제 공사에 참여하지 않은 업체의 직원을 공사에 참여한 업체에 불법으로 입사시킨 점도 확인됐다. 더욱이 해당 공사는 관련 면허도 없는 백솔기업으로 불법 재하도급됐다. 결국 최초 공사를 수주한 2개 업체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중간에서 공사비를 챙긴 것이다.

최초 22억원짜리 석면 철거 공사가 불법 재하도급으로 내려오면서 백솔은 단 4억원에 공사를 진행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불법 하도급과 지분 따먹기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형사처벌이나 과징금, 입찰 자격 제한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관련 기관에 건의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지분 따먹기 등은 결국 부실 공사로 이어져 안전사고 위험을 커지게 하는데도 처벌 규정이 없다"며 "관련 기관에 제도 개선을 건의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붕괴 원인 수사 막바지…재개발 비위는 초기 단계

경찰은 이날 불법 철거가 붕괴 참사로 이어졌다는 원인을 규명했고, 입건된 9명 중 5명을 구속했고, 동구 직원 등 4명을 불구속 송치하는 등 책임자 처벌도 성과를 냈지만 재개발 비위 관련 수사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재개발 비위 등을 수사 중인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브로커 공사 수주 과정 금품 수수 행위 ▲수주업체 간 입찰 담합과 불법 재하도급 ▲재개발 조합 자체의 이권 개입 ▲재개발 자체 비리 등을 집중적으로 수사 중이다.

입찰 담합과 불법 재하도급 관련해서는 3곳 업체들이 각각 3~5개 이름의 업체 이름으로 계약 수주에 참여했거나 실제 공사에 관여하지 않고 이익만 챙긴 '지분 쪼개기'한 정황 등도 확인했다.

현재까지 조합 관계자 4명, 브로커 2명, 공사 수주업체 관계자 8명 등 총 14명을 입건했으며, 이 중 업체 선정 알선 대가로 수억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가 확인된 브로커 B씨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는 등 수사 성과도 나오고 있다.

반부패수사대는 수사 초기부터 재개발 조합의 비리와 지역 정치인·공무원의 유착관계도 확인 중이다. 내부적으로 추가 압수수색이 필요한 상황인지도 정리 중이다. 하지만 수사 특성상 포렌식이나 참고인 진술, 계좌·통신 추적 등에 많은 시간이 소요돼 수사 종료까지 상당한 시간이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반부패수사대는 또 경찰 입건 하루 전 미국으로 도주한 문흥식씨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문씨가 선임한 변호사를 통해 귀국을 설득하고 있다.

한희주 반부패수사대장은 "외부에서 보기엔 수사가 지지부진 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속도감 있게 수사를 진행하기 위해 자료를 확보 중이다"며 "재개발 비리 등에 대해 한점 의혹이 없도록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김종찬기자 jck4151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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